[김우영 광교칼럼] 탑동시민농장 백련 향기와 닭백숙에 더위를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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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탑동시민농장에 핀 백련.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탑동시민농장에 핀 백련.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그날 낮 더위는 35도였다.

아마 올해 들어 가장 더웠던 날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별안간 탑동시민농장에 가고 싶었다.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생각은 있었으나 실행이 어려웠다. 돈 생기는 것도 아닌 일들, 아니 대부분은 써야 하는 일들이 주렁주렁 일정표에 걸리는지...

수원역을 거쳐 경기상상캠퍼스를 지나 혼자서 천천히 걸어 갈 참이었는데 봉담에 사는 아우 ㅇ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무슨 약재를 잔뜩 넣고 닭백숙을 만들고 있으니 내려오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자식처럼 키웠던 조카가 최근 세상을 떠나 밥맛도 술맛도 잃고 집에서 실의에 빠져 있던 ㅇ형을 불러냈다. 힘들 때일수록 사람이 위로가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뙤약볕에 텃밭 나가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뒹구는 오랜 친구 ㅊ도 오라고 했다.

다행이 ㅊ이 차를 끌고 와서 가는 길은 편했다.

봉담에 가기 전 탑동시민농장부터 들렀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쯤, 워낙 찜통 같은 무더위라 아무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민농장 곳곳에선 나무그늘 아래 책을 읽는 사람,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촬영하는 사람,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작물을 가꾸고 수확하는 시민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늘에서 탐스럽게 자란 한 무더기의 대파를 다듬고 있던 노부부는 새벽 5시부터 나왔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가꾸셨느냐고 묻자 “그냥 심으니까 자라던데요, 뭐.”라고 심드렁한 듯 대꾸를 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대파를 수확한 자리에는 또 다시 파를 심어 김장에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비록 여기서 농사지을 형편은 못되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럽긴 하다. 갓 수확한 상추 등 쌈채소와, 토마토, 가지, 오이, 감자, 고추 등 다양한 작물도 키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서라, 관둬라.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데 자주 가서 살펴볼 자신이 없다.

시민농부들이 키운 작물들을 보는 것도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는 효과가 크지만, 도심 속 자연 친화 공간인 넓고 탁 트인 잔디밭과 그 둘레의 나무그늘에 앉아 있으면 그 또한 아름다운 힐링이 된다.

탑동시민농장 잔디밭.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탑동시민농장 잔디밭.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총 3만7635㎡ 규모의 탑동시민농장은 3개 구역의 텃밭과, 꽃을 재배하는 경관단지, 잔디밭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계절별 꽃을 가꾸어 놓은 구역은 방문객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곳이다.

수원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연간 45만 명이 시민농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보여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고 밝힌다.

탑동시민농장은 계절별로 연꽃, 메밀, 꽃양귀비, 수레국화, 해바라기, 코스모스 등이 피어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얼마 전 황화코스모스가 만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모두 져버렸고 지금은 코스모스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대신 백련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연꽃명소만큼은 아니지만 중앙잔디광장 옆 1320㎡ 규모의 백련단지에는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는 순백의 연꽃들이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으니 무더위가 좀 수그러지는 날 방문하면 좋을 것이다.

탑동시민농장은 2019년 권선구 탑동 옛 서울농대 실험목장 자리에 조성됐다. 지난 2018년 도시개발(당수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로 폐쇄된 당수동 시민농장 대신 만들었다.

탑동 시민농장의 규모는 예전 당수동 시민농장보다 작다.

그래도 당수동 보다는 가깝다. 옛 서울농대 자리의 경기상상캠퍼스와 이웃해 있으므로 교통이 편리하다. 수원역에서 걸어가도 20분(물론 내 걸음으로)이면 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산책코스다.

수원시에서 이처럼 탁 트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는 쉽지 않다.

탑동시민농장만 둘러보지 말고 농장 서남쪽 끝에 자리한 서둔야학도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지금도 서둔야학 교실 3동이 남아 있다.

이곳은 1965년부터 1983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대학과 수의과대학의 학생들이 수원 서부지역의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곳이다. 지난 달 세상을 떠난 고색동 출신 이종구 시인도 1978년부터 여기서 공부했다.

야학 교사인 대학생들의 성금으로 부지를 구입했고, 교사와 학생들이 직접 건물을 지었다. 책상과 걸상도 자체 제작했다고 한다.

팔뚝에 맺힌 허연 소금이 눈에 보일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그러나 정신은 상쾌했다. 내 몸도 좋아했나보다. 지난 주 내내 나를 괴롭히던 눈병이 아물기 시작했고 기침도 잦아들었다. 탑동시민농장에 다녀 온 후에.

봉담에 사는 ㅇ아우와 ㅂ세프가 함께 정성껏 만들어 내온 한방 닭백숙의 효능도 한몫했으리라.

김우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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