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이 나무, 고려스님 진각국사의 지팡이가 아니었을까?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로 518번길 33(지번주소 상광교동 130). 상광교동 중간말 민가 마당엔 수령 540년 정도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1982년 수원시 보호수 3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높이 12m, 둘레 4.5m에 이르는 거목이다. 뒤에 소개하겠지만 하광교 길옆의 느티나무가 시민과 광교산 산행객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이 나무의 존재를 아는 수원시민들은 드물다. 하광교의 느티나무 수령(410년)보다 무려 130년이나 더 나이가 많은데도 말이다. 이는 큰길과 떨어져 있고 사람의 발길도 비교적 드문 작은 마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무속인들이 당산나무로 모시는 이 느티나무엔 옛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래전 옛날 광교산 창성사에 가던 승려가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지팡이를 놓고 갔다. 그 후 한참 만에 다시 와보니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났고 이를 본 승려는 지팡이를 그 자리에 심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마을이 당산목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이 나무 옆 중간말 길을 따라 광교산으로 올라가면 창성사지가 나온다. 승려들이 이 길을 통해 창성사로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많아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설에는 그 승려가 고려말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1307~1385)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진각국사 천희는 고려시대의 고승(高僧)으로서 화엄종 중심으로 불교정책을 개혁했다. 수원시 방화수류정 위쪽에는 보물 제14호인 수원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는데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비석 글은 당대의 대문장가인 이색이 지었다. 그러나 창성사는 무너지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창성사지 절터에 방치되었던 이 비는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옆 매향동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진각국사는 57세에 원나라에 가서 2년간 선종을 공부했으며 고려로 돌아와 국사(國師)가 됐다. 국사란 나라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당대의 명망 높고 수행이 깊으며 덕망 있는 승려만이 받을 수 있는 직위이다. 진각국사는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했다.
창성사는 고려시대 화엄종 사찰이었으나 언제 창건되고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도호부 불우조’에 “광교산에 창성사가 있다. 이색이 지은 고려 승 천희(千熙)의 비명(碑銘)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799년에 제작된 ‘범우고’에 “예전에 폐사가 된 것을 이제 수리한다”(故廢今修)는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사)화성연구회 이사인 한정규는 “1872년 제작된 수원부지도와 1894년 경 편찬된 ‘기전영지’ 제1책의 ‘수원읍지’ 기록 등을 볼 때 창성사는 19세기 후반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터엔 지금도 장대석과 주춧돌, 계단석, 석축, 옥개석 기와편 등이 남아 있는데 수원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개년에 걸쳐 한신대박물관에 위탁해 창성사지 학술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고려시기 사찰로서 건축적 연구 가치를 보유한 문화재적 가치가 큰 유적으로 평가받아 2017년 경기도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됐다. 경기도는 지정고시문에서 “창성사는 고려 말 진각국사 천희의 입적사찰이며 자복사(資福寺:왕실의 복을 구하는 사찰)로 선정될 정도의 규모와 높은 위상을 지녔다”면서 “고려 시기 사찰로서의 건축적 연구 가치를 보유한 유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상광교동 느티나무와 진각국사와의 관련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다. 진각국사가 활동했던 시기와 이 나무의 수령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나무의 나이가 540년 정도인데 진각국사가 입적한 시점(1392년)으로만 따져도 620년 전이라는 것.
그러나 이는 전설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 또 80년의 세월은 인간의 수명으로 치면 길다고 할 수 있겠지만 500년 넘게 산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상광교느티나무는 이런 전설이 입혀질 정도로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무속인들은 이 나무가 광교산의 당산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이런 행위들을 미신으로 여기며 멀리하고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직도 오래된 당산나무에 대한 경외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나무와 함께 살아온 상광교동 주민들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