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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의 문학잡설(174) ‘콩 속의 우리 집 불이 환하다’

김승종 / 전 연성대 교수·시인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가 낳은, 어머니의 몸에 근원을 둔 혈연의 자식. 그래서 어머니를 잃은 자식들은 어머니를 추억하며 회귀하고, 고향집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어머니를 못내 애수로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그 국면은 다양하다. 다음 시에서 화자는 어린 시절 안방에서 ‘콩을 고르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도시에서 자란 세대들은 이런 모습이 낯설겠지만, 그 누구도 어머니와 같이한 시공이 없을 수 없기에 이 시를 읽으며 어느덧 잘 양해할 것이다.

어머니는 소반의 콩을 고르고

나는 바람벽의 그림자와 놀았다

콩 속에는 담배밭을 두들기며 지나가는 소내기와

마을에 살던 벌거지들이 들어 있다

양양에서 여량까지 친정길 삼백리 날이 저물어

나는 남폿불 심지를 돋우었다

더러는 내 모르는 소리 하며

어머니가 콩을 고르는 일은

당신의 설움이며 수심을 골라내는 일이었는데

오늘은 나 혼자 콩을 고른다

떠나온 마을에는 누가 사는지

콩 속의 우리 집 불이 환하다

- 「콩을 고르며」/이상국

우리는 먼저 1연, 화자의 어린 시절 정경 회상 진술에서, 어머니와 화자가 한 시공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일에 몰두하여 일정한 거리가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간격이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흠결이 있거나 벌레가 웅크린 콩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골라내는 일에, 화자 자신은 바람벽을 활용해 그림자놀이에 탐닉했었다.

그러면서 화자는 ‘콩 속에는 담배밭을 두들기며 지나가는 소내기’와 ‘마을에 살던 벌거지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들어 있다’에서 알 수 있듯, ‘콩 속’의 이 사정은 화자가 그 소년시절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소견이며, 어머니가 콩을 고르는 이유 제시이기도 하다. ‘벌거지’는 물론이고 여기서 ‘소내기’도 콩을 상하게 하는 부정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어머니가 여름날 땡볕에서 김매며 땀으로 키운 콩에 ‘소내기’는 ‘담배밭’의 담배를 찢’듯 상처를 내며 ‘지나’갔다고 회고하는데, 화자는 짐짓 어머니의 농작 고초를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암시하고 있다. ‘마을에 살던 벌거지들’도 말 그대로 곡식을 파먹는 벌레에 국한되지 않고, 어머니를 힘들게 하거나 잡박하게 구는 마을의 ‘벌거지’ 같은 사람들도 암시하는 듯하다.

1, 2연에서 현재 노년의 화자는 어린 시절 그런 자신이 후술되는 어머니의 심정을 몰랐다고 해서 철없다고 자책하지 않지만, 1연의 진술이 시사하는 어머니와의 거리에는 어머니를 깊이 동정하는 훗날 정서의 기초로 작용하는 유감이 저변에 내포되어 있다. ‘마을에 살던 벌거지들’ 운운이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에 기인한 어머니의 모종 고초를 직접 진술하였다면 지나치게 이 국면이 부각될 뿐만 아니라 5연 ‘설움’과 ‘수심’을 거의 그렇게 단정할 수 있게 유도하여 이 시의 미덕이기도 한 독자 유추의 음미를 제한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하겠다.

시 문맥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3연. 우리는 1행, ‘양양에서 여량까지 친정길 삼백리 날이 저물어’에, 친정에서 점점 멀어져간 어머니의 행로와 더불어 여량에서 양양까지 시집 생활 ‘삼백리’도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간다는 취지도 병렬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그 2행, ‘나는 남폿불 심지를 돋우었다’는 화자가 어린 시절 그날 ‘날이 저물어’ 자신이 어머니의 콩 고르는 일을 도운 행위를 기억하는 진술이면서, 4, 5연에서 드디어 제시되는 뒷날 어머니의 콩 고르는 일에 내포되어 있던, 그때는 몰랐던 사실과 각성을 조명하는 전환을 예비하는 진술로 읽을 수 있다.

즉 어머니의 콩 고르는 일에 내포된 다른 의미 토로를 준비하는 진술로. 시인의 이 추정 촉진은 직후 4연 1행, ‘더러는 내 모르는 소리 하며’라는, 화자의 현재 회상어조로 마무리된다. 이 미묘한 시간과 의미 복합의 언어경제는 이 시의 미덕. 다시 말해 4연 2행과 5연, ‘어머니가 콩을 고르는 일은//당신의 설움이며 수심을 골라내는 일이었는데/오늘은 나 혼자 콩을 고른다’도 현재 상태 화자의 목소리이면서,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그 이후의 각성이다.

‘당신의 설움이며 수심을 골라내는 일’에서 ‘설움’과 ‘수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2연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 불현 듯, 화자의 어머니가 남편과 사별한 과부일 수 있다고 뒤늦게나마 추정하게 된다. 이 신세에 관련되기도 한 ‘설움’과 ‘수심’도 드디어. 어린 화자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기도 한.

그런데 그 직후 5연 2행, ‘오늘은 나 혼자 콩을 고른다’는 진술은 동시에 새 문제를 제기해 우리의 긴장과 관심은 증폭된다. 화자는 고백한다, 어머니에겐가. 자신에겐가. 그때 어머니처럼 콩을 고른다고. 물론 실제로 콩을 고르지는 않고, 자신의 ‘설움’과 ‘수심’을. 또 고백한다. 어머니는 옆에 아들이라도 있었지만, 현재 자신은 혼자라고.

이 쓸쓸하고 외로운 고독은 잠시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그러나 종결 연인 직후 6연에서 상태는 또 변전한다. 어머니와 살다 떠나온 ‘마을에는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지만, ‘콩 속의 우리 집’은 ‘불이 환하다’고. 이 ‘콩 속’은 2연의 ‘콩 속’과 물론 다르다. ‘콩’도 2연의 ‘콩’은 버리는 콩이지만, 6연의 ‘콩’은 어머니가 모든 ‘설움’과 ‘수심’과, 그리고 ‘더러는 내 모르는 소리’와 유관하기는 하지만 그 승화로 아들을 위해 존치했던 ‘콩’이다. 이후에 이 사실도 알게 된 화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아련하게 찬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시사되었지만 우리는 이 시 읽기를 이대로 마치기보다는 사족이 되더라도 부연을 좀 이으면 좋을 것이다. ‘오늘은 나 혼자 콩을 고른다’고 했는데, 이 독백이 화자가 수행한 추억의 최종 심경이 아니란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하며 그 환하고 따뜻했던 빛, 그 ‘불’을 그때처럼 ‘심지를 돋우’어 현재에 연장하면서 근간의 모종 ‘설움’과 ‘수심’을 중화(中和)하며 극복하는 힘을 얻고 있다.

김승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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