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수원이 기억해야 할 사람 이승언 선생(상)
화성행궁 채색도 발견, 복원의 단초를 제공
최근 전흥섭 전 수원문화원 사무국장과, 정준성 News S 주필, 내가 모였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화성연구회 회원들이다.
그 자리에서 많은 추억들을 나눴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35년 전 화성행궁 복원이 추진되던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심재덕 시장의 뚝심과 지혜, 그리고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에서 홍보부장을 맡았던 나,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온힘을 다해 궂은일을 도맡았던 전흥섭 당시 사무국장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지역 언론계 원로인 정준성 주필의 추임새가 더해져 생맥주 잔 수는 계속 늘어났다.
어느덧 대화는 이승언(1945년 4월10일~2002년 1월20일) 선생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80세를 넘긴 전흥섭 형은 “화성행궁 복원의 최대 공로자는 심재덕 시장(당시 수원문화원장)이지만 복원의 단초(端初)를 제공한 또 다른 공로자는 이승언”이라고 단언했다.
2024년 4월 24일 수원화성행궁 ‘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이 열렸다. 사실상 행궁복원사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뜻 깊은 행사였다.
나는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홍보부장을 맡았다는 작은 공로로 과분하게 내빈석에 앉았다.
이홍구·임병호·송철호 추진위원, 실무를 맡아 고생이 많았던 전흥섭 당시 수원문화원 사무국장 등과 함께였다.
그리고 복원추진운동의 맨 앞에 섰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심재덕 시장님, 임사빈 경기도지사님, 김동휘 추진위원장님, 안익승 선생님, 서지학자 이종학 독도박물관장님, 그리고 이승언 선생을 생각했다. 그분들이 이 자리에 계셔야하는데...
화성행궁 복원 사업은 1989년 초부터 시작됐다. 심재덕 당시 수원문화원장은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 이승언(李承彦, 본명 이한기, 당시 시흥군지 상임편찬위원) 선생에게 수원화성행궁 관련 자료를 수집해달라고 요청했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발굴해내는 끈질긴 근성의 이승언 선생은 마침내 서울대 규장각에서 채색본 ‘화성행궁도’를 발견했고 이 그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장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제가 규장각에서 화성행궁도를 찾았습니다.”
1989년 5월 말, 이승언이 수원문화원장실로 심재덕을 찾아왔다.
“드디어 찾아왔구나!”
가슴이 뭉클해진 심재덕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는 이승언과 함께 화성행궁도를 보기 시작했다. 원본이 아닌 사진으로 보는 것이기에 정확한 그림의 크기나 재질은 알 수 없었지만, 누런 바탕에 화성행궁이 채색되었고 오른쪽 상단에는 한글로 ‘화성행궁도’라고 쓰여 있었다. 신풍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화성행궁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있는 화성행궁 목판본 그림을 본 적은 있지만, 이처럼 확연하게 화성행궁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사진을 눈앞에서 보니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재덕은 곧바로 이승언과 수원문화원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원의 효맥(孝脈)은 이것이다. 행궁 복원만이 효원의 전통을 살리는 길이다.”
-김준혁, 2019, ‘아름다운 화장실 혁명 미스터토일렛 심재덕 평전’, (사) 미스터토일렛 심재덕 기념사업회(도서출판 아이콘), 137~138쪽.
그 자리엔 나를 비롯한 수원사랑 편집위원들도 있었다. 지금도 한껏 자랑스러워하던 그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채색본 화성행궁도가 발견되면서 복원 사업은 본격 시작됐다.
그러나 수원화성행궁은 수원화성의 모태였다. 게다가 일제에 의해 철거됐기 때문에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복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관광도시 수원을 만들기 위해서도 행궁복원은 필요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심 원장은 이승언 선생에게 수원화성행궁 관련 자료를 수집해달라고 요청했고 그가 큰 일을 해낸 것이다.
채색본 화성행궁도가 발견되면서 복원사업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89년 6월17일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발기인회에 이어 1989년 10월엔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창립됐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위원장 김동휘, 부위원장 홍의선·안익승·심재덕, 추진본부장 이홍구, 기획부장 임병호, 총무부장 송철호, 사료편찬부장 이승언, 섭외부장 김상용, 홍보부장 김우영 등이었다. 지역 원로, 문화예술계, 학계, 지역사회단체 대표, 언론계 등 각계에서 모였다.
그런 와중에 화성행궁터에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을 재건축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추진위원회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추진위원회 심재덕 수원문화원장과 김동휘 선생, 안익승 선생, 이종학 선생, 이홍구 선생 등은 당시 임사빈 경기도지사를 찾아갔다. 사전 예고 없이 임 지사의 방에 ‘쳐들어간’ 추진위원들은 화성행궁 복원을 위해서 수원의료원을 이전 신축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설계가 끝난 상태임에도 임 지사는 즉각 이 건의를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담당 국장을 불러 이전 신축을 지시했다. 이로써 복원사업은 정상궤도에 올랐다. 수원시민들이 심재덕, 이승언 등과 함께 임사빈이란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다음 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