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이종학 선생이 대노할 일!

Preparing the English translation… (한국어 원문 표시 중)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사운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0년 가을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 선생 화성 특별 자료전’이 열렸다.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생전의 이종학 선생. (사진=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용창 이사)
사운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0년 가을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 선생 화성 특별 자료전’이 열렸다.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생전의 이종학 선생. (사진=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용창 이사)

얼마 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구글 번역기에서 ‘독도’를 일본어로 번역하면 ‘独島’(독도)가 아닌 일본만이 억지 주장하는 명칭인 ‘竹島’(다케시마)로 결과가 나온다. 명백한 오류”라고 밝혔다.

나는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야겠다. 극우파와 혐한파, 일제강점기 등 역사문제와 독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지닌 정치인을 뺀 다수의 선량하고 양심적인 일본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실제로 내가 만나본 일본인들은 참으로 착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내가 속해있는 (사)화성연구회의 해외 자매단체인 히메지시(姬路市) 하리마한글연구회 회원들이다.

상호 방문 교류 때마다 그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은 우리를 감동시켰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부류들의 행태는 나는 물론이고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킨다. 여기에 화를 더하게 한 것이 구글의 ‘다케시마’ 검색 결과다.

이종학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당장 구글 본사로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하셨을 것이다.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 1927~2002)선생은 서지학자이자 자료수집가로 독도와 이순신장군, 일본침략사, 항일 운동사 자료수집에 평생을 바친 수원의 인물이다.

수원시청 입구에 마련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으며, 수원광교박물관엔 선생이 기증한 소중한 자료를 모아둔 ‘사운실(史芸室)’이 있다.

특히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입증하기 위해 50여 차례나 일본을 드나들면서 각종 자료 등을 찾아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11월 세상을 떠난 선생은, 엄청난 양의 관련자료를 독도박물관과 독립기념관, 현충사, 수원시 등에 기증했다.

지난 2018년 3·1절을 앞두고 나는 경기신문 사설에서 이렇게 선생을 회고했다.

“선생은 생전에 ‘독도 수호의 사명은 남북이 따로 없으므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소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조했다. 그리고 2001년 3월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전시 자료들은 독도박물관 특별기획전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도 공개됐다. 지난해 10월엔 이종학 선생이 기증한 자료들을 전시·보관하고 있는 수원 광교박물관이 울릉도독도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3·1절엔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항일정신과 함께 독도를 지키기 위해 평생 독도자료를 수집하고 기증한 이종학 선생도 기억해주길 바란다”라고.

1986년 간행된 수원시사 편찬 과정에서 처음으로 선생을 만났다. 내가 기억하는 첫인상은 ‘아주 강직하고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사람’이었다. 선생은 편찬위원으로 참여했고 나는 집필위원으로서 문화예술과 행정 일부를 썼다.

업무적으로 만난데다 나이차이도 30년이나 벌어져서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수원에 본사가 있는 일간지 중부일보에서 문화부 기자노릇을 하고 있던 1990년 선생께서 신문사로 나를 찾아 오셨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 이 지역 독립운동 활동 관련 자료들을 건넸고 이를 다룬 기사는 1면 톱을 차지했다. 그 뒤로도 새로 발견한 자료가 있으면 수원여고 앞에 있는 고등반점이란 중국음식점으로 불러냈다. 주로 일제의 탄압과 그에 맞선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자료들이었다. 그 기사들은 대부분 1면이나 사회면 톱을 차지하곤 했다.

한번은 두툼한 서류봉투를 건넸다. 2001년 3월 1일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 관련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전시 팸플릿부터 전시회를 극찬한 북한 ‘로동신문’의 기사 스크랩, 전시회 사진 등이었다.

선생은 평소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독한 고량주를 두어 잔 마셨다.

“내가 북한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이 증거를 토대로 해서 북이라도 우리가 못 받았던 사과와 배상도 제대로 받으라고요. 독도 수호의 사명은 남북이 따로 없으므로 힘을 합쳐야 해요”

이 말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2001년 3월 1일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 왼쪽에서 두 번째 안경 쓴 이가 이종학 선생.(사진=독도박물관)
2001년 3월 1일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 왼쪽에서 두 번째 안경 쓴 이가 이종학 선생.(사진=독도박물관)

전기한 것처럼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선생이었다. 독도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자비를 들여 일본 도서관과 고문헌 수집상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렇게 모은 귀중한 역사자료들이 수원광교박물관 사운실에 전시돼 있다.

독도 관련 사료 중 일부는 1997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울릉군)에 기증했다.

수원 광교박물관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라고 분명하게 표기된 ‘삼국접양지도’ 등 독도 관련 자료와 함께 이순신장군의 ‘이충무공전서’와 수원화성, 간도, 금강산 등 귀중한 자료도 있다.

기록엔 독도가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표시돼 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1905년, 일방적으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2005년부터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했다. 한국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에 우리정부는 같은 해 3월 17일 국민들의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이에 국가기념일로 ‘독도의 날’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구글의 오류는 즉각 시정돼야 한다.

그래야 저 세상의 사운 선생께서도 다소나마 근심을 덜게 될 것이다.

이번 주말엔 수원광교박물관에 있는 사운 이종학 사료관에 가서 선생의 유품이나마 만나야겠다.

김우영 논설실장
Send a news tip to News SYour tip becomes the news · Your identity is protectedSend t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