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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광교칼럼] 행궁동 화성성벽 위, 이 신령스러운 느티나무는 왜 보호수가 되지 못했을까?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가을에 촬영한 화성성벽 느티나무.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가을에 촬영한 화성성벽 느티나무.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진 화성성벽 중간 쯤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 가슴 높이 나무 둘레가 4m50cm나 될 정도로 외양이 거대하지만 아직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내가 수원북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장안문 밖 자동차 정비공업사와 연결돼 있는 정미소 뒤편 양철지붕 골방에 잠시 살았다. 가끔 놀러 간 친구네 집 뒤에 이 나무가 있었다.

진학한 고등학교가 달라 그 뒤로는 만나지 못한 그 친구의 아버지는 교통경찰이라고 했다. 가끔 사이드카라고 불리는 교통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때도 이 느티나무는 거대했다.

2014년 신경림 시인이 시집 ‘사진관집 이층’을 펴냈는데 거기에 ‘다시 느티나무가’라는 시가 실려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새 환갑 진갑 모두 지나 이제 칠순, 욕망을 조금이나마 비워낸 눈으로 보니, 이 나무는 더욱 더 거대해 보인다. 게다가 풍채마저 당당하다. 아름답다. 오래된 나무들이 갖고 있는 나무동공(洞空)이나 가지꺾임 현상도 보이지 않고 건강한 모습이다.

이 나무의 나이는 200년은 넘어 보인다.

위치도 장안문에서 화서문 사이 안쪽 성벽위에 자리하고 있어 흡사 수원화성을 지키는 든든한 장수 같다.

아니다. 어찌 보면 세계문화유산 화성 성신(城神)이 인자한 모습으로 현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저녁 어스름에 성 아래서 올려다보면 무섭기 보다는 푸근한 느낌마저 든다. 화성성벽과 행궁동 마을과 잘 어울려 눈맛이 좋다.

나만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밤이나 낮이나 젊은이들이 나무 아래 앉아 밝게 웃으며 쉬거나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 이 나무의 선한 기운을 알 수 있다.

화성성벽 느티나무의 웅자(雄姿). 나무 밑에 서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나무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사진=김우영)
화성성벽 느티나무의 웅자(雄姿). 나무 밑에 서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나무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사진=김우영)

느티나무는 성곽 안에 살았던 수원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지켜보았을 듯싶다. 그 아래 살던 내 친구가 태어난 것도, 나와 그가 다람쥐처럼 허물어진 성벽 틈을 오르내리던 것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왜 이 느티나무는 마을입구나 동네 가운데, 관아 앞에 있지 않고 성벽 위에 올라와 있을까?

화성은 돌로 외벽을 쌓고 안을 흙으로 채운 내탁식(內托式) 성벽이다.

한동민 박사(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장)에 따르면 흙으로 이뤄진 내탁 부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축성 시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각종 기록에도 성곽과 시설물 주변에 나무를 심은 기록이 보인다.

지난 2019년 수원시정연구원은 ‘수원시 연관 식물자원 스토리텔링 연구’를 펴냈다. 저자인 김은영 연구위원은 “수원 내 정조의 식목 사업은 주로 현륭원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의하면 팔달산, 매향동, 전성(全城) 내탁(內托), 양변, 대천, 성 밖은 용연, 관길야, 영화정 이북 등 갑인년(1794)부터 정사년(1797)까지 매년 봄과 가을 총 일곱차례에 걸쳐 식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기서 내탁은 성곽 전체의 안쪽 부분이며, 대천은 수원천변이다.

같은 책에는 성곽시설물 주변에 심은 나무들도 정리돼 있다. 가래나무, 버드나무, 복숭아나무, 뽕나무, 소나무, 오얏(자두)나무 등이다. 하지만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많이 심은 수종들만 기록한 탓에 느티나무는 빠졌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 뒤에 심었거나.

성 위에 줄지어 울창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옛 사진에서 확인 된다. 특히 일제강점기인 1940년 수원과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찍은 흑백영화 ‘수업료’에는 성벽 위와 연무대, 창룡문, 화서문 주변에 촘촘하게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수업료’는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매향심상소학교(현 매향여중·고)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로 고려영화사의 이창용이 제작하고 최인규와 방한준이 공동으로 감독했다. 주연은 정찬조, 김종일.

수원에서 전 장면을 촬영, 당시 수원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한 영상물이다.

2014년 6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중국 전영자료원에 있던 35mm 프린트를 입수, 복원작업을 거쳐 2015년 극장과 DVD로 공개됐다. 나도 수원시청 상영회에서 그 영화를 봤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는 옛 사진에 찍혀있는 그 많은 나무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곧은 나무들은 일제에 의해 베어졌고, 일부는 6.25 때 피난민들이 베어 움막을 짓는데 사용되거나 난방·취사용 땔감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화성 성벽도 당시에 많이 훼손됐다. 성 옆에 터를 잡은 피난민들이 성 벽체 돌과 벽돌을 가져가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융릉과 건릉의 수라간도 피난민들이 헐어내 땔감으로 썼다는 말도 있다.

성벽 위 낙락장송들은 사라졌지만 이 느티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아무리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해도 이 신령스러운 나무만큼은 손 댈 수 없었을지 모른다.

김우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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