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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광교칼럼] 6월 29일, 화성이 사실상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날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수원화성 야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원화성 야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1997년 12월 6일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수원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날이다. 수원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수원시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나는 그때 수원시에서 ‘늘푸른 수원’이라는 시정신문을 만들고 있었고, 이 사실을 ‘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되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진심으로 기뻤다. 수원화성이 수원시만의 유산이 아니라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인류의 소중한 역사 유산으로 인정받았으니 수원시민으로서 어깨에 힘을 줄만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직접 현지에 가서 세계유산 등재를 성사시킨 장본인, 심재덕 당시 수원시장의 감격은 나보다 열배, 백배는 더 했을 것이다.

세계유산은 해당 국가를 넘어 전 세계가 검증하고 인정한 인류의 유산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보유 지역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해당 국가나 지방정부는 유적의 관리와 보존에도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다.

세계유산을 만나려는 관광객이 증가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등재 조건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정조대왕 사후, 관리가 부실해졌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화성과 화성행궁은 상당부분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1973년 박정희 정부는 국방유적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이 때 이병희 국회의원이 수원화성복원을 이 사업에 포함시킴에 따라 화성은 잃었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이후 초대 민선시장으로 선출된 심재덕 시장은 관광산업이 미래 수원시민의 미래 먹거리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수원시를 세계 속의 관광도시로 만들기 위해 수원화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원시가 세계유산 등재 추진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화성축성 200년을 맞은 해인 1996년부터였다.

그러나 등재까지의 길은 험했다. 1997년 6월 21일 외무부로부터 “이번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화성의 세계유산 등재가 유보될 것 같다”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국제기념물유적협회 소속 스리랑카의 실바(Nimal De Silva)가 화성을 실사하기 위해 방문했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국제기념물유적협회 소속 스리랑카의 실바(Nimal De Silva)가 화성을 실사하기 위해 방문했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이보다 앞서 1997년 3월초에 국제기념물유적협회 소속 스리랑카의 실바(Nimal De Silva)가 화성을 실사하기 위해 수원을 방문했다. 실사를 담당한 사람의 판단이 등재 여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원시는 최선을 다했다. 담당자도 긍정적인 의견을 표명해서 유네스코 이사회 통과라는 희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창덕궁만 세계유산 등재 권고를 받았고, 화성은 등재가 유보된 것이다.

심재덕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심 시장은 1997년 6월 23일 유네스코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그의 짐에는 향토사학자 이종학 선생이 만든 ‘화성성역의궤’ 영인본과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방패연이 들어있었다.

심 시장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유네스코 한국대표부부터 방문했다. 동행한 박두호 기자(연합 뉴스)의 후일담에 따르면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는 “여기까지 오실 필요 없다니까요. 집행위원들이 안 된다고 했는데...”라고 하면서 수원시 일행의 방문을 당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표부 서기관 1명을 심재덕 일행이 유네스코 업무를 보는 동안 보좌하도록 배려했고 업무용 차량과 운전기사까지 배정했다.

유네스코 이사회가 수원화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보류한 이유는 “화성 그 자체로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주변경관이 너무도 좋지 않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6.25 전쟁 때 파괴된 곳이 많아 화성을 ‘온전한 유적’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세계유산 등재는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심 시장은 파리시내에서 여행 중이던 백승길 교수를 운명처럼 만났다. 백 교수는 화성 실사를 위해 수원에 왔던 국제기념물유적협회 실바를 응대한 사람이다.

심 시장은 국제적인 박물관 전문가로서 유네스코에도 인맥이 많았고 국제기구의 의전에 대해서도 잘 아는 백 교수에게 “내가 나중에 유럽여행을 따로 시켜줄 테니 꼭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심재덕 평전 발간위원회가 펴낸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평전’(김준혁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심재덕 시장이 6월 25일 새벽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끝없이 높은 계단을 미끄러지기도 하며 간신히 올라 정상 가까이 갔는데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심재덕은 그 손을 잡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이 꿈을 꾼 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손을 잡아끌어 올려준 이가 백 교수가 아니었을까?

백 교수는 국제기념물협의회(ICOMS) 조정관을 만나 이사회 7개국 심의위원들과의 미팅 날짜를 잡아주었다. 그날이 바로 6.25날이었다. 당시 멕시코가 의장국이었는데 심 시장은 호주, 일본, 독일의 심사위원 등과 잇따라 면담을 했다. 유네스코 임원들은 심 시장의 적극적인 의지에 감동 받았다.

심 시장은 화성을 보호하기 위해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심사위원들은 심시장의 진정성을 느끼고 등재를 위한 몇 가지 보완사항을 요구했다. 심 시장은 앞으로 화성주변의 토지를 매입해 성곽과 주거지역을 이격하고, 매입한 토지는 화성관련 시설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네스코 집행 위원들은 심 시장의 답변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화성을 창덕궁과 함께 집행위원회 본안으로 상정했다.

집행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앞둔 6월 26일 오후 8시 심재덕 시장이 개최한 만찬에 집행위원 13명이 참석했다. 심 시장의 열정에 감동한 유네스코 대사가 집행위원들을 모아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심 시장은 화성보호 프로그램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협박’도 들어있었다.

“수원시민들은 저에게 개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성 성곽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개발 요구는 너무나도 심합니다. 화성 안은 문화재보호법 때문에 집을 높게도 못 짓고,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지 않으면 저는 곧바로 수원으로 돌아가 화성을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화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저와 시민들 때문이 아니고 바로 당신들 때문이란 것을 알기 바랍니다.”

참, 지금 생각해봐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평소 심 시장의 추진력과 두둑한 배짱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이 어떤 자리인가. 읍소를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협박이라니...

그럼에도 집행위원들은 심 시장의 열의에 감동을 받았다.

드디어 만찬 이틀 뒤인 6월 29일, 수원화성은 일본, 호주 대표의 지지발언에 힘입어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 권고’를 받았다. 이는 사실상의 ‘등재’였다.

심 시장이 파리로 직접 가서 집행위원들을 만나고 설득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지학자 고 이종학 선생이 사비로 발간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도 큰 도움이 됐다.

드디어 1997년 12월 6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화성은 창덕궁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정식 등재됐다.

심재덕 시장의 열정과 뚝심으로 인해 수원은 세계유산 보유도시가 됐고 매년 국내외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문화와 역사가 있는 관광의 도시가 됐다.

효의 성곽순례 행사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화성을 걷고 있는 심재덕 당시 수원문화원장. (사진=수원문화원)
효의 성곽순례 행사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화성을 걷고 있는 심재덕 당시 수원문화원장. (사진=수원문화원)

요즘 화성을 산책하다보면 외국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만난다. 어느 날은 관광객의 절반 정도가 외국인들이었던 적도 있었다.

심 시장이 원했던 장면이 현실화됐다. 게다가 그의 필생 사업 중의 하나였던 화성행궁 복원공사도 마무리됐다.

정조대왕, 이병희 의원과 함께 수원의 역사는 ‘영원한 수원시장’ 심재덕을 잊지 않을 것이다.

김우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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