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영 주심 '걸스데이' 막말 사설 사과보다 먼저 할 일, 지소연의 경고 카드부터 취소하라
성희롱 발언에 항의한 선수는 경기에 못 나가고,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심판은 ‘교육 약속’ 뒤로 사라졌다. 지난 2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WK리그 수원FC 위민-서울시청전에서 벌어진 심판 성희롱 파문의 현주소다. 지소연은 주심이 무선 교신에서 자신을 겨냥해 “생리하나 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고, 항의 과정에서 받은 경고 누적으로 다음 달 2일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피해를 호소한 쪽만 불이익을 떠안은 이 기막힌 구도를 바로잡는 일이 모든 수습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두루뭉술한 유감 표명도, 재발 방지 교육 약속도 아니다. 지소연이 그날 항의 과정에서 받은 경고 처분을 취소하거나 징계 효력을 정지시켜, 억울한 결장부터 막는 것이다. 문제의 경고가 성희롱 발언에 대한 정당한 항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경고를 근거로 한 출장 정지는 피해자에게 징계를 얹는 2차 가해와 다름없다. 진상 조사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결장은 다음 달 2일로 시한이 정해져 있다. 조사를 이유로 시간을 끄는 사이 처분만 집행된다면, 협회는 결과적으로 피해자 불이익을 방치한 책임까지 짊어지게 된다.
협회의 지금까지 대응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 협회 심판팀은 감독관 보고서를 열람하기도 전에 “‘생리’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며 소속 심판의 결백부터 선언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곧 말장난이었음이 드러났다. 이후 보도를 통해 당시 주심이 실제로 쓴 표현은 생리를 뜻하는 은어 ‘걸스데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은어로 바꿔 말했을 뿐 발언의 취지는 달라지지 않는데, 협회는 ‘그 단어는 안 썼다’는 문장 뒤에 숨은 것이다. 같은 문서에서 “불필요한 언행은 잘못된 행동”이라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 자기모순까지 겹치면, 이것은 해명이 아니라 은폐 시도에 가깝다. 이런 기관이 “조사 중”이라는 말 뒤에 숨어 경고 처분의 집행만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을 공정한 절차라 부를 수 없다.
규정이 없어 못 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오심과 부적절한 판정 관리에 대한 사후 구제는 스포츠 행정의 기본이며, 징계 절차의 정지와 재심의는 협회와 연맹의 결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의지다. 무선 교신은 심판진 전원이 함께 듣는 공식 채널인 만큼, 교신 기록과 심판진 진술을 대조하면 진상은 어렵지 않게 가려진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 심판의 경기 배정을 중지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도 미룰 이유가 없다. 수원FC가 선수단 사실확인서를 토대로 협회와 연맹에 진상 조사를 공식 요청하기로 한 만큼, 이제 공은 완전히 협회로 넘어갔다.
한국 여자축구는 지소연을 비롯한 선수들의 헌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 간판선수가 성희롱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그라운드를 비우는 장면을 방치한 채, 협회가 여자축구의 저변 확대와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사과문 한 장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경고 카드 취소가 먼저다. 그것이 협회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최소한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