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화(文話) 시대 도파민의 시대, 이창동이 던진 ‘영화의 존재 이유’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안았다. 2002년 영화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지 정확히 24년 만에 거둔 본상 성과다.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베네치아영화제는 단순한 상업적 성과를 치하하는 자리가 아니다. 시대의 미학적 실험과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예술적 존엄을 가장 첨예하게 검증하는 경연장이다. 그곳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이창동이라는 이름이 세계 영화사에서 갖는 독보적인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1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팔라초 델 치네마에서 열린 제83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이 감독이 남긴 소감은 환희보다 침착했고, 화려함보다 아팠다.
“우리는 노동의 의미가 퇴색하고 인간관계가 점점 단절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시대에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 상은 내가 계속해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도파민의 시대, ‘영화의 존재 이유’를 묻다
이 소감은 단순한 겸손이나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넘어선다. 알고리즘과 숏폼이 자극을 쏟아내는 시대에 영화를 한낱 ‘시간 소비용 콘텐츠’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거장의 선언이자, 자본과 효율성에 밀려 노동이 소외되고 타인과의 소통이 끊겨나가는 시대적 비극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창작자의 윤리다. 은사자상이라는 영예를 완성된 결과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시대를 향해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을 계속 던지라는 채찍질로 규정한 것이다.
OTT 자본으로 내몰린 거장, 한국 영화의 씁쓸한 초상
이 묵직한 화두 뒤에는 한국 영화계의 씁쓸한 단면도 함께 겹쳐진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조차 국내 투자 환경에서는 제작비 마련이 어려워 ‘극장용 영화’를 포기하고 글로벌 OTT 자본에 기대야만 했던 것이 오늘날 영화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극장의 위기와 투자 경색이라는 파고 속에서, 한국 영화 자본이 예술적 도전과 거장의 시도를 담아내지 못하고 내몰린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스트리밍 자본으로 태어난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과정을 다룬다. “우리는 과연 끊어진 관계 속에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이 작품에 베네치아 평단이 본상과 함께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까지 안겨준 이유는 명확하다. 자본의 출처와 상관없이, 영화라는 매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작품 자체로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스크린 앞에 다시 모여야 할 이유
최근 한국 영화계는 관객 감소와 제작 위축이라는 잔혹한 기로에 서 있다. 투자 경색으로 거장마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향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이 감독의 수상은 단순히 국위선양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전히 스크린 앞에 모여 영화를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한국 영화계 전체의 응답이자 자존심의 회복이다.
24년 전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세계에 각인시켰던 이창동은 2026년 다시 같은 자리에서 영화라는 예술의 생존과 본질을 묻고 있다.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겠다”는 그 울림에 이제 우리가 답을 고민할 차례다.